퀴어 이성애
퀴어 이성애(Queer heterosexuality)는 이성애적 실천이나 정체성의 일종으로, 논쟁의 여지는 있으나[1] 퀴어라고도 불린다. "퀴어 이성애"는 비전형적인 젠더표현을 보이거나, 특정 문화의 헤게모니적 남성성 및 여성성과 다른 성 역할을 채택하는 이성애자, 시스젠더, 타성애자들로 구성된다고 주장된다.[2]
이 개념은 1990년대 중반 급진적 여성주의 내에서 비판적으로 처음 논의되었으며,[3] 1997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클라이드 스미스(Clyde Smith)가 발표한 논문을 통해 긍정적인 자기 정체성으로 제시되었다.[4] 2003년에는 《빌리지 보이스》가 〈퀴어 이성애자〉(The Queer Heterosexual)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으며, 이후 이 용어를 사용하는 이들에 의해 꾸준히 인용되어 왔다.[5]
이성애자가 스스로를 '퀴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논란이 많다.[1] LGBTQ+ 커뮤니티의 일부는 이성애자가 '퀴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모욕적인 문화적 전유로 간주한다. 이는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으로 인해 억압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이 '유행'이나 매력으로 인식되는 퀴어 정체성의 측면만을 전유하면서, 정작 그들이 모방하는 대상이 겪는 동시다발적인 억압은 무시하는 행위라는 비판이다.[1][6] 한편 일반적으로 퀴어로 간주되는 트랜스젠더 또한 이성애자일 수 있으나,[7][8] 이러한 개인들은 종종 트랜스헤테로(transhet)라고 불리기도 한다.
페미니즘 비판과 퀴어 이론
[편집]실리아 키칭어와 수 윌킨슨은 "포스트모더니즘과 퀴어 이론에서 파생된 개념"으로서 "'퀴어' 이성애"를 통한 이성애의 복권을 시도하는 것은[3] 급진적 여성주의 관점에서 볼 때 결함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퀴어 이성애'가 구체적으로 탐구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퀴어 이성애자'라는 개념이 퀴어 이론에 확립된 것"은 사람들이 그것이 가능하거나 바람직하다고 확신해서가 아니라, 버틀러적 관점의 '젠더퍽'(gender-fucking)을 성립시키는 데 필요한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9] '퀴어 이성애'는 모든 범주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이성애자'와 같은 범주가 불필요해지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명명된다. 퀴어 이론[10]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젠더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아네트 슐리히터(Annette Schlichter)는 2004년 논문에서 퀴어 이성애에 관한 담론이 "퀴어로 식별되고자 하는 이성애자 지식인들의 열망을 통해 이성애적 주체성을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 논문은 퀴어 이성애의 계보를 정리하며, "성적 규범성에 대한 퀴어 비판은 특정 정체성의 역사에 얽매여 있으면서도, 동시에 이미 패권화된 정체성을 포함한 성적 정체성들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데 헌신한다"고 지적했다. 한편으로는 "레즈비언의 가시성과 차이의 문제를 우려하는 비평가들이 종종 퀴어 이성애자라는 유령을 불러일으키며... 이를 퀴어 프로젝트가 사회적·정치적 정체성과 권력 관계를 왜곡하고 있다는 징후로 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11]
동성애 전염이라는 생각이 반드시 호모포비아적인가라는 문제는 제쳐두고, 가이 데이비드슨(Guy Davidson)은 《빌리지 보이스》의 기사를 예로 들며 이성애에 대한 퀴어적 전복이라는 아이디어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설명했다. 특히 그는 이성애적 성적 실천을 퀴어링하는 LGBT 운동에 대한 찬사와 "퀴어 이성애자"의 생산에 관한 트리스탄 타오르미노의 글을 언급했다.[12]
《Straight writ queer》에서 저자들은 퀴어 이성애자가 이제 막 벽장에서 나오기 시작했다고 인정하며, 역사적·현대적 문학 속에서 "퀴어 이성애자를 식별하고 아웃시키며", 이성애 규범성을 비판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본질적으로 퀴어한 이성애적 실천"을 찾고자 했다. 이 책에서는 은둔 수도자, 사드 후작, 앨저넌 찰스 스윈번 등을 퀴어 이성애자의 사례로 꼽는다. 또한 "남성 마조히즘은 남근적 지배에 근거한 남성성을 거부함으로써, 이성애 규범성에 대한 퀴어 이성애적 저항의 전략적 지점이 된다"고 설명한다.[13]
2018년 논문에서 헤더 브룩(Heather Brook)은 '동성결혼'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퀴어 이성애'와 유사하게 모순 형용적인지를 비교했다. 두 용어 모두 이성애에 대한 본질주의적 이해에 도전하는 동시에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동성결혼'이 이성애 결혼의 규범성으로부터 사회 자본을 획득하려는 목적을 갖는 반면, '퀴어 이성애'는 퀴어함의 유동성을 끌어다 쓴다.[14][15] 브룩은 두 용어 모두 전유에 대한 공포와 사회적 제도의 젠더적 이해가 폄하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유발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이성애자들이 자신의 이성애를 설명하기 위해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재탈환한 용어인 '퀴어'를 사용할 때, 이는 사회적 의식 속에서 그 단어를 '이성애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브룩은 퀴어 이성애가 결혼과 같은 이성애 규범적 제도가 "이성애와 동성애, 남성과 여성, 퀴어와 이성애자"와 같은 이분법적 대립 밖에서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지 탐구하도록 강요한다고 주장한다.[14]
산드라 예페센(Sandra Jeppesen)은 《Queering heterosexuality》에서 이성애자 개인과 이성애 문화를 구분한다. 그녀는 이성애자로 식별되는 개인들이 이성애 문화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퀴어 문화에 합류하거나 이를 모방하려 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퀴어 문화는 이성애자들에게 가치 있는 교훈을 줄 수 있지만, 이러한 교류는 일방향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이성애적 공간은 퀴어링을 통해 혜택을 볼 수 있지만, 퀴어 공간이 이성애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또한 트랜스젠더나 젠더 변이 개인이 일정 기간 동성애자로 살다가 나중에 성전환을 통해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또한 많은 퀴어 커플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이성애자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퀴어링 이성애"는 이성애 규범성과 같은 이성애 문화의 요소를 제거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8]
남성성에 대한 조사
[편집]2005년 로버트 히즐리(Robert Heasley)는 그가 "이성애자-퀴어 남성"(straight-queer males)이라고 명명한 남성 집단 사이의 퀴어 이성애를 탐구했다.[2] 히즐리에 따르면 이들은 스스로를 이성애자로 규정하지만, 전통적인 남성적 성격이 지배하는 사회적 공간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남성들이다. 히즐리는 비패권적인 남성적 행동을 설명할 용어를 만듦으로써 남성성에 대한 이해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동성애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기, 안기거나 껴안기, 손잡기, 여성스럽게 입기, 정서적 개방성 표현하기 등을 이성애자-퀴어 남성들이 보이는 행동으로 나열했다.[2]
자신의 행동이 "대체로 이성애자"(mostly straight)라고 답한 남성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었다. 일부는 젠더와 성적 지향의 전통적인 모델에 제약을 느꼈고, 일부는 남성에게 매력을 느꼈다. 어떤 이들은 남성에게 약간의 성적 관심은 있지만 로맨틱한 동성결합이나 성관계를 원하지는 않았고, 또 다른 이들은 남성에게 로맨틱한 관심은 느끼지만 성적 관심은 느끼지 않았다.[16]
논란
[편집]'퀴어'가 흔히 이성애자나 시스젠더가 아닌 사람들을 위한 포괄적 용어로 정의되기 때문에,[17] '퀴어 이성애자'라는 용어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1] 일부 LGBTQ 사람들은 시스젠더 이성애자가 '퀴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문화적 전유로 간주한다. 이 용어가 과거 LGBTQ 사람들을 억압하기 위한 멸칭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6][1] 스스로를 퀴어로 규정하는 이성애자 유명인들은 거센 비판에 직면해 왔는데, 비판자들은 이들의 정체성이 LGBTQ로서 겪어야 하는 억압을 감수하지 않으면서 LGBTQ의 "유행하는" 부분만을 가지고 "노는" 것에 불과하며, 결과적으로 퀴어들이 겪는 투쟁을 가볍게 만든다고 주장한다.[1]
동성애자이자 퀴어인 누군가에게, 이성애자가 퀴어로 식별하는 것은 게이 문화의 옷과 음악, 문화적·정치적 가치틀:시크와 같은 좋은 부분들만 전유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게이 폭행, 청소년기의 수치심, 성인이 되어서의 수치심, 그리고 평생을 동성애자로 살며 내면화된 호모포비아 같은 고통스러운 경험은 쏙 뺀 채 말이다.[1]
이 용어에 대한 비평가들은 '퀴어 이성애자'의 사용을 마돈나와 같은 유명인들의 전유와 비교한다. 마돈나는 게이들,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라티노 게이들 사이에서 유래한 하위문화이자 춤 스타일인 보그 댄스를 공연에 사용하여 큰 수익을 올렸으나, 정작 그 스타일의 창시자들은 그러한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18] 《게이 문화의 흥망성쇠》의 저자 다니엘 해리스(Daniel Harris)는 스스로를 '퀴어 이성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뭔가 용감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 이성애자 남성들이 그런 (용어들을) 사용한다는 것이 조금 불쾌하다"고 말했다.
게이 비평가 제이미슨 피츠패트릭(Jameson Fitzpatrick)은 제임스 프랭코의 《Straight James / Gay James》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이성애 규범적이고 시스 규범적인 권력 구조의 근본적인 허구에 속지 않고 이를 영속시키고 싶지 않아 하는 이성애자 시스젠더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상상할 수 없다. 다만 그 어려움이 오늘날 많은 퀴어들이 여전히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폭력보다 결코 클 리 없다는 점은 말할 수 있다. 이것이 프랭코의 퀴어 선언이 지닌 문제의 핵심이자, 많은 게이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지점일 것이다. 바로 관점의 부재다.[19]
피츠패트릭은 퀴어 이성애자의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정작 본인 스스로 그 라벨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으며, 프랭코가 그의 책에서 한 것처럼 "자신의 특권을 과시"하는 사람도 없다고 덧붙였다. 앤서니 몰(Anthony Moll) 또한 프랭코의 예술이 퀴어하다는 생각을 부정하며 다음과 같이 논했다. "그의 이성애적 자아와 동성애적 자아 사이의 인터뷰라는 개념부터, 퀴어 이성애를 논하려는 서툰 시도에 이르기까지, 프랭코는 흥미롭지만 결국 미완성인 아이디어를 떠들어대는 초보 퀴어 이론가처럼 보일 뿐이다."[20]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1 2 3 4 5 6 7 Mortimer, Dora (2016년 2월 9일). “Can Straight People Be Queer? - An increasing number of young celebrities are labeling themselves 'queer.' But what does this mean for the queer community?”. 《바이스 미디어 그룹》. 2018년 12월 1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12월 13일에 확인함.
- 1 2 3 Ingraham, Chrys (2005), 《Thinking Straight: the power, the promise, and the paradox of heterosexuality》, Routeledge, 109–130쪽, ISBN 978-0-415-93273-8, 2022년 3월 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1년 12월 4일에 확인함
- 1 2 Kitzinger, Celia; Wilkinson, Sue (1994), “Virgins and Queers: Rehabilitating Heterosexuality?”, 《Gender & Society》 8 (3): 444–462, doi:10.1177/089124394008003009, S2CID 143147731
- ↑ Smith, Clyde (1997년 8월 1일), “How I Became a Queer Heterosexual”, 《Cultural Research: Clyde F. Smith》 ("Beyond Boundaries," An International Conference on Sexuality, University of Amsterdam), 2016년 3월 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1월 19일에 확인함; 대부분의 논문은 이 두 사례를 논의의 시작점으로 인용한다.
- ↑ Taormino, Tristan (2003년 5월 6일). “The Queer Heterosexual”. The Village Voice. 2015년 5월 3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9년 5월 24일에 확인함.
- 1 2 “The Origins Of 'Queer' As A Slur”. 《History Buff》. 2016년 12월 2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6년 12월 14일에 확인함.
- ↑ Reisner, Sari L.; Choi, Soon Kyu; Herman, Jody L.; Bockting, Walter; Krueger, Evan A.; Meyer, Ilan H. (2023년 9월 15일). 《Sexual orientation in transgender adults in the United States》. 《BMC Public Health》 23. 1799쪽. doi:10.1186/s12889-023-16654-z. ISSN 1471-2458. PMC 10503109. PMID 37715161.
- 1 2 Jeppesen, Sandra (2012). 〈Queering heterosexuality〉. Daring, C. B.; Shannon, Deric; Rogue, J.; Volcano, Abbey (편집). 《Queering anarchism: addressing and undressing power and desire》. Edinburgh: AK Press. ISBN 978-1-84935-120-1.
- ↑ Kitzinger, Celia; Wilkinson, Sue (1996), 〈Virgins and Queers: Rehabilitating Heterosexuality?〉, Davis, Sara; Gergen, Mary (편집), 《Towards a New Psychology of Gender》, Routledge, 411–412쪽, ISBN 978-0-415-91308-9, 2022년 3월 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1년 12월 4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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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ll, Anthony. “James Franco is not a Queer Poet”. 《citypaper.com》. 2016년 10월 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6년 12월 14일에 확인함.
더 읽어보기
[편집]- Clyde Smith, "How I Became a Queer Heterosexual," in Calvin Thomas, "Straight with a Twist: Queer Theory and the Subject of Heterosexuality", 60–67 (2000)
- Robert Heasley, "Crossing the Borders of Gendered Sexuality: Queer Masculinities of Straight Men", in Chrys Ingraham, Ed., Thinking Straight: The Power, Promise and Paradox of Heterosexuality (Routledge: UK: 2005 Page 109)
- Eve Kosofsky Sedgwick, Tendencies, Duke University Press (1993)
- Ann Powers, "Queer in the Streets, Straight in the Sheets: Notes on Passing," Utne Reader, November–December 1993
- Roberta Mock, "Heteroqueer ladies: some performative transactions between gay men and heterosexual women," Feminist Review 75, pp. 20–37 (2003)
- Elizabeth Grosz, "Experimental Desire: Rethinking Queer Subjectivity," in Supposing the Subject, ed. Joan Copjec, Verso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