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인가, 실체인가…기묘한 모녀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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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문학동네

기묘한 이야기다. 소개팅에 나온 남자가 대뜸 ‘가호’에게 “그쪽처럼 못생긴 상대는 처음”이라고 하질 않나, 꿈에서 본 개미핥기의 지시로 이사 간 집 툇마루 아래에 실제 개미핥기가 살고 있질 않나. 어머니는 흰개미 여왕에 빙의돼 있고, 칼 가는 가게 주인은 알고보니 재규어다. 꿈인가, 은유인가, 실체인가. 현실과 비현실을 나누고, 그 둘의 긴장감을 동력으로 흡입력을 만들어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방식은 여전하다. 그래도 특기할 점은 있다.

첫째, 하루키 소설 중 처음으로 여성이 단독 주인공이다. 하루키 소설은 남성 중심적이었다. 여성은 서사의 도구로 사용됐다. 하루키를 향한 비판의 핵심 축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번엔 여성이 주인공이다. 더 정확히는, 딸과 어머니 관계에 대한 소설이다. 하루키는 아들과 아버지 관계를 자주 썼다. 『해변의 카프카』(2002)가 대표적이다. 오이디푸스 신화를 변용하면서, 부친 살해라는 모티프를 가져왔다. 반면 『가호』는 모친 살해의 서사다. 가호는 흰개미 여왕에 씐 어머니를 찌른다. 그러나 많은 부친 살해 모티프가 아버지의 압도적 존재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라면, 가호의 모친 살해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함이다. ‘혼외 정사를 할 수도 있는’ 어머니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서.

그래서 하루키의 이번 소설은 한계가 있다. 가호라는 여성의 성장 이야기로 읽히는 측면이 없지 않으나, 결국 어머니를 진보 없이 원래 자리로 되돌려놓는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가호에 대한 묘사가 하루키 소설에서 등장했던 남성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둘째,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가호는 그림책 작가다. 가호가 겪는 이야기는 그림책이 된다. 그대로 그려지는 건 아니다. 가호는 소개팅 남성에게 “못생긴 상대”라는 소리를 듣고 얼굴 잃은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임시로 다른 사람의 얼굴을 붙이고 다니는데, 한 청년이 찾아와 “그쪽처럼 얼굴이 멋진 여자를 만나는 건 처음”(32쪽)이라고 한다. 임시방편의 얼굴이 그때 진짜 얼굴이 된다. 그 이야기는 가호의 현실과 조응한다.

“좋은 이야기에는 반드시 어떤 유용성이 포함되어 있지.”(164쪽) 가호의 삼촌은 문득 발터 벤야민의 말을 인용해 이런 말을 한다. 벤야민의 에세이에 담긴 ‘이야기의 유용성’ 개념은, 간단히 말하면 이야기가 자신의 삶을 판단하고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가호』에선 ‘유용성 있는 이야기’가 그림책일 수도 있고, 개미핥기 등이 등장하는 온갖 환상적인 경험일 수도 있다. 가호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알아간다.

셋째, 이야기의 흡입력은 뛰어나다. 금방 읽는다. 하루키의 기존 장편소설에 비해 짧기도 하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2023) 같은 전작엔 실망했을 수 있어도, 이번엔 아닐 것 같다. 걸작이라곤 할 수 없어도. 아오키 고헤이 아이치현립대 교수는 일본 매체 ‘리얼사운드’에 『가호』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는데, 하루키를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에 비교하며 “린치는 세상을 떠났지만 하루키는 아직 살아있다. (글쓰기) 엔진을 최대한 돌려 써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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